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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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힘에의 의지.=== 미녀와 야수, 뱀파이어이야기 등에 끌리는 것은 이들이 원초적 힘과 깊은 고통에 대한 갈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서 우리는 때로 이성의 질서보다 강렬함을 원한다. 우리를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미지의 힘과 가능성에 대한 동경이 사랑의 감정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사랑은 무관심의 상태를 뛰어넘고 우리를 살아 있다고, 그것도 숭고하게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열정이다. 그것은 어쩌면 단순한 미지의 불가능한 힘에 대한 갈증이 아니라, 인간에게 가능했었던 힘과 의지에 대한 동경,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한 힘의 극대화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른다. 니체는 그 기능과 효용의 측면에서 정량화되고 계산과 예측가능하며 동시에 파편화되고 대체가능해진 인간의 왜소화와 상실로 인해 더 이상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 말한다. 사랑과 같은 도덕적인 단어들이 사실은 힘에의 의지가 쓰고 있는 가면에 불과하다 주장한다. 사랑의 욕구가 쉽게 만족될수록 그 사랑의 대상이 갖고 있는 심리적 가치가 하락한다는 사실도 스스로의 힘을 입증하기 위해 저항을 필요로 하는 힘에의 의지의 특성을 반영한다. 소유욕과 사랑은 동일한 뿌리에서 자라난 충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종종 삶이 너무 허무해서 획득하고도 바래지 않을 것을 찾아보려 하나.. 쉽지 않다. 그저 게임이나 성취, 획득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의 힘을 증명하고 힘을 얻기에 힘쓸 뿐. "소유물은 소유에 의해 시시한 것이 된다. 쾌락도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항상 새로운 것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유지하려 한다." 사랑의 순간에 드러나는 그 고상하고 진귀한 성질들은 당연히 사랑에 빠진 당사자의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특성이 아니다. 니체는 이러한 사랑의 기만을 경계하여 사랑을 이유로 행하는 결혼은 금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기독교에서 사랑은 단어의 애매함과 다의성에 기대어 물리적 실제일 수 없는, 원수마저 사랑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기독교인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삶을 축복받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ref>'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p.266. 양대종."니체 철학에서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철학연구(2018.02):297-321에서 재인용.</ref> 사랑은 실재하는 것을 실재하는 것과 다르게 보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착시를 통해 고통을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사랑을 통해 만들어진 이상들은 환영을 통해 유사만족을 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고 행하고 느낀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결국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기쁨으로 바꾸는 일이 사랑인 것이다.<ref>양대종."니체 철학에서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철학연구(2018.02):297-32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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