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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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졸업논문}} == 개요 == 사랑이 뭘까? 좋아함과 사랑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학창시절 잠깐의 설레임과 부부의 사랑은 뭐가 다른 것일까? 어른들의 하룻밤과 부부의 사랑은 무엇이 다른것일까? 많은 의문들을 갖고 탐색해 보지만, 결론은 항상 같다. 사랑은 말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정의해 보려는 시도는 언제나 값지다. 정의할 수 없는 것에의 도전. <br /> = 정의와 특성 = 사랑을 정의하기 위해선 그 특성과 떨어뜨려 생각하기가 너무 어렵다. 무언가를 정의하는 방법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특성. 그 대상의 특성을 생각해보기 # 원인. 그 대상의 원인을 생각해보기 # 차이. 그것이 아닌 것에 대해 살펴보기 사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누군가 "포르노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지만, 무엇이 포르노인지 말할 수는 있다."고 말했듯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할 순 없지만, 무엇이 사랑인지 말할 순 있다. == 차이 == === 인식을 벗어나게 됨 === 좋아한다는 것은 내 인지 안에 있다. 나는 돈가스를 좋아하고, 여자친구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대상이 좋아하는 대상일 수 있는 이유는 지금 바로 떠올리긴 어렵더라도 생각해보면 그 갈피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좋아함의 이유가 사라진 돈가스, 떡볶이는 탐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음식은 맛없다고 불릴 뿐, 좋아함의 틀 안에 들지 못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은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다.(시간이 오래걸릴 지라도) 그러나, 한 대상의 일부분이 좋아지고, 또 다른 일부분이 좋아지고, 또다시 다른 부분이 좋아지고.. 좋아짐이 중첩되어 어느 정도의 복잡성을 넘어섰을 때 우리는 그 대상이 왜 좋았는지 잊어버리고 만다. 마치 대머리에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심었을 때 언젠가 풍성한 머리칼이 되듯, 양적인 변화가 어느새 질적 변화로 이어지고 만다. 그리고 우린 좋아함의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사랑의 시작은 분명 좋아함이다. 하지만 점차 그 이유는 흩어진다. 그리고 심지어 그 이유가 사라졌을 때에도 사랑은 남는다. 좋아함에 본질이 있다면, 사랑은 실존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 그 이유조차 잊혀지는 것. 그 모든 이유가 잊혀지고 순수하게 결과만이 남았을 때. 그 상태가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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