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편집하기
Sam
(
토론
|
기여
)
님의 2021년 4월 29일 (목) 23:39 판
(
→어떤 사람에게...?
)
(
차이
)
← 이전 판
|
최신판
(
차이
) |
다음 판 →
(
차이
)
둘러보기로 이동
검색으로 이동
경고: 이 문서의 오래된 판을 편집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게시하면, 이 판 이후로 바뀐 모든 편집이 사라집니다.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솔로졸업논문}} ==개요== 사랑이 뭘까? 좋아함과 사랑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학창시절 잠깐의 설레임과 부부의 사랑은 뭐가 다른 것일까? 어른들의 하룻밤과 부부의 사랑은 무엇이 다른것일까? 많은 의문들을 갖고 탐색해 보지만, 결론은 항상 같다. 사랑은 말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정의해 보려는 시도는 언제나 값지다. 정의할 수 없는 것에의 도전. <br /> =정의와 특성= 사랑을 정의하기 위해선 그 특성과 떨어뜨려 생각하기가 너무 어렵다. 무언가를 정의하는 방법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특성. 그 대상의 특성을 생각해보기 #원인. 그 대상의 원인을 생각해보기 #차이. 그것이 아닌 것에 대해 살펴보기 사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누군가 "포르노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지만, 무엇이 포르노인지 말할 수는 있다."고 말했듯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할 순 없지만, 무엇이 사랑인지 말할 순 있다. == 특성과 원인 == ===소크라테스=== 그가 말했던 사랑은 연인에 대한 사랑을 뛰어넘는 개념이다. 그는 사랑이란 '자신이 가지지 못한 특성을 영구적으로 소유하는 것'이라 말했다 전해진다.<ref>향연</ref>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 그렇다고 하여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특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닌,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의 중간지점에 있는 상태라 말했다. 사랑한다는 그 자체로 그것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것을 일부 소유한 것이라고.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것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추구한다. 또한 그것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한다. 즉, 추구자는 중간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천국에선 배우자가 없다(의미없다?)는 말씀과도 통한다. ===깨지기 쉬운 것=== 좋은 과학이론은 반증 경로의 수가 많으면서 반증되지 않는 것이다. 좋은 사랑은 깰 수 있는 방법이 수만가지나 되면서도 깨지지 않는 것이라 보아야 할까, 아니면 반증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라야 할까. Claire가 친구네 집에 가는 것을 막으면서.. 나는 결혼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난 다른 대산을 떠올려 보려 한다. 다른 여자, 다른 만남의 가능성, 결혼 자체의 포기. 가지 않은 길은 매끄러워 보여 눈길이 가기 마련, 그러나, 이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다른 길에서 이 길을 부러워했으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에. 두려워 깨질 것 같으면서도 깨지지 않는다. 결혼이 필수는 아니라지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라이 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굳이 다른 만남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굳이 한 사람에게 속박되고, 굳이 제도에 속박되고자 결심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야. === 힌두교 === 힌두교에선 사랑을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 말한다. 사랑은 믿음과 희망이 훌륭한 덕목이게끔, 근본적인 의미부여의 역할을 갖고 있다. === 깨달음 === 한국에선 '사랑'은 한 단어로 수많은 개념들이 집약된다. 반면, '에로스', '스톨게' 등으로 사랑을 구분하고 해부하려는 시도도 적잖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파편화는 사랑의 본질을 가릴 수 있지만,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엔 커다란 도움이 된다. 인생을 관찰해 보면 사랑하는 일, 결혼하는 일은 진리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공자가 이립, 지천명 따위의 단계를 구분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말했듯 사랑에 대해서도 이런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0~20살 까지는 필리아, 20~40까지는 에로스, 40~60까지는 스톨게, 60~ 아가페에 이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가히 성인이라 불릴 수 있을 터. == 사랑이 아닌 것 == === 성숙한 사랑이 아닌 것<ref>황필호."21세기의 사랑철학". 한국연구재단(NRF) 연구성과물(2003) p.50~51</ref> === 1. 사람들은 사랑의 본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남에게 사랑스럽게보일까 신경쓴다. 2. 사랑의 본질과 중요성이 사랑하는 사람의 능력이 아닌, 사랑의 대상에 있다 착각한다. 그래서 대상의 선택에 모든 힘을 쏟아 그 이후에 스스로 찾아야 할 행복에 대한 노력을 포기하기 쉽다. 실로, 결혼상대자를 직접 선택하지 않았던 조상들도 충분히 행복했던 모양이다. 사랑의 주체는 나이고, 본질은 객체가 아닌, 주체에 있다. 사랑의 성공은 적당한 짝을 찾는 데 있지 않고, 적당한 짝이 되는 데 있다.(황필호 '길위에서' 1985년. pp.19~20) 3. 사랑에 빠지는 상태와 사랑을 지탱해 나가는 상태를 혼동한다. 첫눈에 반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으로 승화될 가능성이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시키는 것. ===인식을 벗어나게 됨=== 좋아한다는 것은 내 인지 안에 있다. 나는 돈가스를 좋아하고, 여자친구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대상이 좋아하는 대상일 수 있는 이유는 지금 바로 떠올리긴 어렵더라도 생각해보면 그 갈피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좋아함의 이유가 사라진 돈가스, 떡볶이는 탐미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음식은 맛없다고 불릴 뿐, 좋아함의 틀 안에 들지 못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은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다.(시간이 오래걸릴 지라도) 그러나, 한 대상의 일부분이 좋아지고, 또 다른 일부분이 좋아지고, 또다시 다른 부분이 좋아지고.. 좋아짐이 중첩되어 어느 정도의 복잡성을 넘어섰을 때 우리는 그 대상이 왜 좋았는지 잊어버리고 만다. 마치 대머리에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심었을 때 언젠가 풍성한 머리칼이 되듯, 양적인 변화가 어느새 질적 변화로 이어지고 만다. 그리고 우린 좋아함의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사랑의 시작은 분명 좋아함이다. 하지만 점차 그 이유는 흩어진다. 그리고 심지어 그 이유가 사라졌을 때에도 사랑은 남는다. 좋아함에 본질이 있다면, 사랑은 실존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 그 이유조차 잊혀지는 것. 그 모든 이유가 잊혀지고 순수하게 결과만이 남았을 때. 그 상태가 사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br /> == 개인적 의미 == ==필요한 덕목== 사랑을 누리기에 앞서 필요한 덕목이 있다. ===인내===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새벽 3시에 잠들어서.. 8시에 전화를 했다. 1분 뒤에 전화를 준다더니.. 말도 없고.. 결국 8시 40분이 되어 다시 들어가 잠든다.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지만.. 지금 내가 여기서 감정을 풀면 상대의 하루일과가 영 시원찮으리란 생각에.. 화내길 보류한다. <br /><br /> {| class="wikitable" |내가 모든 기억을 잃고, 이 사람이 내 연인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스킨십의 농도는 옅어지겠지만, 내가 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연인이 된다는 것은 사랑의 당위성을 지정, 획득하는 것. 둘 사이의 기억, 경험도 중요하지만, 사람 자체의 성품, 인격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사랑이 성장하는 것은 그 둘 사이의 관계,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여타의 요인보다, 그 사람 자체를 성장시키는 데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연인을 통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해간다. |} = 결론 = === 사랑? === "우리가 시간보다 더욱 친숙하고 더욱 확실하게 토론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시간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는 확실히 그것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에도 그것을 이해한다. 그러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내게서 묻지 않으면 나는 시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시간을 묻는 사람에게 설명하려면, 나는 시간을 모른다."<ref>Augustine. The Confession. bk,11,chap.14 재인용. 황필호."21세기의 사랑철학". 한국연구재단(NRF) 연구성과물(2003):17-56</ref> 아, 그렇네. 숨 쉬기를 의식하면 숨쉬기가 불편해지듯, 의식하지 않던 피아노 연주에서 의식하기 시작하면 연주가 끊기듯. 사랑은 그런 활동과 비슷한 것 같아. 사랑에 대한 기계적 정의가 가능하다면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듯 풍요로운 실체는 아닐 것이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수록 풍요로운 생명체일 것.<ref>황필호."21세기의 사랑철학". 한국연구재단(NRF) 연구성과물(2003) p.47</ref> == 그럼에도 불구하고 == === 지식 === 지식이 결여된 존경은 방종이 되고, 상대방의 욕구를 알지 못하는 배려는 오히려 그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지식은 더욱 많은 사랑을 만들어내는 변증법적인 관계에 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알고픈 나의 욕망을 증진시키고, 지식은 사랑하고픈 나의 욕망을 증진시킨다.<ref>황필호."21세기의 사랑철학". 한국연구재단(NRF) 연구성과물(2003) p.49</ref> 사랑은 실천할 뿐 아니라 충분히 숙고되어야 하는 주제이다. 노련한 의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술을 집도하지만, 그가 해부학적 지식을 얻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었다는 과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후천적 노력으로 습득해야 하는 것.<ref>황필호."21세기의 사랑철학". 한국연구재단(NRF) 연구성과물(2003) p.53</ref> <br /> = 주석 = <references />
요약:
학교의 모든 지식. SMwiki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학교의 모든 지식. SMwiki: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솔로졸업논문
(
편집
)
둘러보기 메뉴
개인 도구
로그인하지 않음
토론
기여
로그인
이름공간
문서
토론
한국어
보기
읽기
편집
원본 편집
역사 보기
더 보기
검색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